인사발령 정당성 기준 (업무 필요성, 절차적 정당성, 생활 불이익)

노트북 화면에 인사발령 메일을 띄워두고 체스판 옆에서 고민하는 11년 차 HR 담당자의 모습, 따뜻하고 전문적인 분위기의 사무실 배경

"다음 주부터 광주 지사로 발령입니다." 한 줄짜리 메일을 받은 직원의 표정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서류상으로는 '조직 효율화'라는 네 글자로 정리되지만, 그 이면에는 한 가족의 주말 풍경이 송두리째 바뀌는 현실이 놓여 있습니다. 저는 11년간 HR 업무를 담당하며 수십 건의 인사발령을 기획하고 실행해 왔지만, 여전히 가장 조심스러운 것이 바로 이 '사람을 옮기는 일'입니다.

업무상 필요성이 생활 불이익보다 커야 한다는 원칙

일반적으로 인사발령은 회사의 경영권에 속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건 반쪽짜리 진실입니다. 법원은 인사발령의 정당성을 판단할 때 세 가지 요건을 동시에 검토합니다. 첫째는 업무상 필요성, 둘째는 근로자의 생활상 불이익과의 비교형량, 셋째는 절차적 정당성입니다(출처: 고용노동부).

특히 두 번째 요건이 핵심입니다. 업무상 필요성(業務上 必要性)이란 조직 개편이나 인력 수급 등 객관적인 경영상 이유를 뜻합니다. 쉽게 말해 '이 사람을 왜 지금 그곳으로 보내야 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이 필요성이 근로자가 겪게 될 불이익보다 '반드시' 커야 한다는 점입니다. 같은 정도로는 부족합니다.

저는 반도체 기업에서 해외 인사를 담당하던 시절, 실리콘밸리 주재원 발령을 준비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본사에서는 '글로벌 역량 강화'라는 명분을 들었지만, 해당 직원에게는 초등학생 두 자녀의 전학과 배우자의 경력 단절이라는 구체적인 생활 불이익이 발생했습니다. 결국 우리는 자녀 학비 전액 지원, 배우자 현지 취업 지원 프로그램, 귀국 후 승진 보장 등을 패키지로 제시했고, 3개월간의 면담 끝에 합의를 이끌어냈습니다. 솔직히 이 과정이 없었다면 법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절차적 정당성, 사후 통보는 인정되지 않는다

인사발령에는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사내 인사발령과 사외 인사발령입니다. 사내 인사발령은 전보(轉補), 전직(轉職), 승진 등을 포함하며, 원칙적으로 근로자의 동의 없이 회사가 일방적으로 시행할 수 있습니다. 반면 사외 인사발령 중 전출(轉出)은 원 소속을 유지하며 계열사 등에서 근무하는 형태이고, 전적(轉籍)은 기존 회사를 퇴사하고 새로운 회사와 계약을 맺는 것으로 반드시 근로자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많은 회사가 놓치는 게 바로 '절차적 정당성'입니다. 아무리 업무상 필요성이 크고 생활 불이익이 작다 해도,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통보하면 그 발령은 부당해집니다. 저는 평가 업무를 담당하던 시절 팀장 보직 해임 건을 처리한 적이 있는데, 당시 HR팀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렸습니다. "이미 결정됐으니 통보만 하면 되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저는 최소 2회 이상의 면담과 서면 의견 청취 절차를 고집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 직원은 발령을 수용했고, 이후 법적 분쟁도 없었습니다.

실무에서 자주 보는 실수는 이미 결정을 내린 뒤 '형식적으로' 면담하는 겁니다. 법원은 이를 사전 협의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협의란 근로자의 의견이 최종 결정에 반영될 여지가 있는 상태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제가 인사기획 업무를 맡은 이후로는 모든 주요 발령에 대해 최소 2주 전에 1차 면담을 실시하고, 그 내용을 문서화하도록 프로세스를 변경했습니다. 번거롭지만, 이것이 조직과 구성원 모두를 보호하는 최소한의 장치입니다.

부당한 인사발령,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인사발령이 부당해지는 지점은 생각보다 명확합니다. 업무상 필요성이 없거나, 생활 불이익이 과도하거나, 절차를 무시했을 때입니다. 제 경험상 가장 위험한 케이스는 다음 세 가지였습니다.

  1. 특정 수당 삭감을 목적으로 한 직무 변경: 연구개발 수당을 없애기 위해 R&D 직원을 영업팀으로 보내는 경우, 업무상 필요성을 입증하기 어렵습니다.
  2. 보복성 인사: 노조 활동이나 내부 고발 이후 전혀 연관 없는 부서로 발령하는 것은 명백한 부당인사입니다. 실제로 한 방송사에서 사장 퇴진 운동에 참여한 앵커를 인터넷 뉴스팀으로 보낸 사례가 법원에서 무효 판결을 받았습니다.
  3. 퇴사 유도를 위한 대기 발령: 코로나19 시기 일부 여행사가 직원들을 무기한 대기 발령하여 심리적 압박을 가한 사례가 있었는데, 이 역시 부당한 인사로 판단되었습니다.

저는 HR 기획 업무를 하면서 '인사발령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사용합니다. 발령 사유, 대상자 선정 근거, 생활 불이익 최소화 방안, 면담 일정 등을 사전에 점검하는 거죠. 특히 원거리 발령의 경우 교통비 지원이나 사택 제공 여부를 반드시 검토합니다. 이런 보전책이 있느냐 없느냐가 법원의 판단을 가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다만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정당한 발령임에도 불구하고 근로자가 단순히 "현재 팀이 편하다"는 이유로 거부하면, 이는 업무 지시 위반으로 징계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상황을 여러 번 목격했는데, 감정적으로 거부하기보다는 발령의 정당성 요건을 꼼꼼히 따져본 후 노무사나 노동청에 상담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11년 전 처음 HR 업무를 시작했을 때는 '효율적인 인력 배치'라는 말이 그럴듯하게 들렸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압니다. 인사발령은 장기판의 말을 옮기는 게임이 아니라, 누군가의 아침 풍경을 바꾸는 일이라는 것을요. 법적 기준을 충족하는 것은 최소한의 방어선일 뿐, 진짜 HR의 전문성은 구성원이 '존중받고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섬세한 소통에서 나옵니다. 이 글이 인사발령을 앞둔 분들께, 혹은 인사 업무를 담당하시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 참고: https://youtu.be/OZbl_aVCJ68?si=rveUomsaEn1nvTy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