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연장 현실화 (계속고용, 직무중심, 인사체계)

사무실에서 노트북과 서류를 활용해 젊은 동료들과 협업하며 전문성을 발휘하고 있는 60대 시니어 직장인들의 모습. 계속고용 제도와 직무 중심 인사 체계를 상징하는 이미지

정년 60세 이후에도 일하고 싶으신가요? 아니, 더 정확히 물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60세에 퇴직한 뒤 연금을 받기까지 5년을 어떻게 버틸 계획이신가요?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이 2033년부터 65세로 늦춰지면서, 법정 정년과 연금 수급 사이에 생긴 이 공백은 이제 개인의 노후 설계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사회적 과제가 되었습니다. 저는 HR 업무를 11년째 수행하며 이 문제를 현장에서 직접 목격하고 있습니다. 60세임에도 현역 못지않은 체력과 노하우를 가진 분들이 정작 일할 기회를 찾지 못하는 모순된 상황 말이죠.

계속고용 의무화, 정년 연장과 무엇이 다른가요?

많은 분들이 정년 연장을 이야기할 때 단순히 "60세에서 65세로 정년을 늘리면 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하십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인건비 부담과 생산성 저하 우려가 크고, 청년 일자리 문제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죠. 그래서 일본이 선택한 방식이 바로 '계속고용 의무화'였습니다.

일본은 2004년 고령자 고용 안정법을 개정하며 기업에 세 가지 선택지를 제시했습니다. 정년을 65세로 연장하거나, 60세 이후 매년 고용을 연장하거나, 아예 정년을 폐지하는 방식이었죠. 흥미롭게도 일본 기업의 약 80%는 두 번째 방식, 즉 매년 고용 계약을 갱신하는 형태를 선택했습니다(출처: 일본 후생노동성). 이는 우리나라의 촉탁직과 유사한 개념으로, 정년이 끝난 후 근로 조건을 재조정하여 고용을 유지하는 방식입니다.

제가 현장에서 느낀 바로는, 이 방식의 핵심은 '유연성'에 있습니다. 기업은 임금을 하향 조정하거나 직무를 변경할 수 있고, 근로자는 자신의 상황에 맞춰 근로 시간을 조정할 수 있죠. 계속고용 의무화(Continued Employment System)란 법적 정년은 유지하되, 일정 연령까지 고용 기회를 보장하는 제도를 뜻합니다. 쉽게 말해 정년을 완전히 연장하는 대신, 기업과 근로자가 협의하여 고용을 이어갈 수 있는 법적 틀을 만드는 것입니다.

한국도 이와 유사한 경로를 밟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는 2027년까지 유예 기간을 두고, 2028년부터 62세, 2030년 63세, 2032년 64세, 2033년 65세까지 단계적으로 계속 고용 의무 연령을 확대하는 방안을 제안했습니다. 저는 이 제안이 현실화될 경우, 많은 기업이 일본처럼 매년 계약을 갱신하는 방식을 선택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직무중심 인사체계로의 전환, 왜 피할 수 없나요?

정년 연장이나 계속고용 의무화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질문이 있습니다. "나이 든 직원에게 어떻게 임금을 책정할 것인가?" 과거 정년 60세 의무화 당시 많은 기업이 임금피크제(Wage Peak System)를 도입했습니다. 임금피크제란 일정 연령 이후 임금을 단계적으로 삭감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표면적으로는 고용 유지를 위한 합리적 방안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숙련된 인력의 동기를 꺾고 세대 갈등을 부추기는 부작용이 컸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조직을 포함해 여러 기업에서 임금피크제 도입 후 소송이 잇따랐고, 직원들의 사기는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연령만을 기준으로 임금을 기계적으로 삭감하는 것은 개인의 실질적 기여도와 무관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불공정하다는 인식이 강했죠. 더욱이 60세 이상 근로자라도 충분히 생산적인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데,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보상을 줄이는 것은 조직 전체의 역동성을 해칩니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요? 바로 직무 기반 성과 중심 인사 관리 체계로의 전환입니다. 직무 기반 인사 체계(Job-based HR System)란 개인의 연차나 나이가 아닌, 담당하는 직무의 가치와 성과에 따라 보상과 평가가 이루어지는 시스템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무슨 일을 하느냐'와 '그 일을 얼마나 잘 해내느냐'가 임금과 승진의 기준이 되는 것이죠.

이러한 체계 전환이 필요한 이유는 명확합니다. 연공서열 기반 임금 체계에서는 고령 인력의 인건비가 자동으로 상승하지만, 실제 기여도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직무 중심 체계에서는 60세든 40세든 동일한 직무를 수행한다면 비슷한 수준의 보상을 받게 되므로, 나이를 이유로 한 차별이 줄어듭니다. 물론 이는 기업 문화와 조직 구조 전반의 변화를 요구하는 어려운 과제입니다. 하지만 정년 연장 시대에 기업이 생존하려면 피할 수 없는 선택입니다.

  1. 직무 기술서 정교화: 각 직무의 성과 책임과 요구 역량을 명확히 정의하고, 이를 기반으로 채용·평가·보상 체계를 재설계합니다.
  2. 성과 평가 체계 개편: 연차나 직급이 아닌, 개인이 목표 달성에 기여한 정도를 중심으로 평가하는 시스템을 도입합니다.
  3. 직급 체계 단순화: 과도하게 세분화된 직급 체계를 역할 중심으로 재편하여, 나이와 무관하게 필요한 역량을 갖춘 사람이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합니다.

저는 이러한 변화가 단순히 정년 연장에 대응하기 위한 방편이 아니라, 조직의 생산성과 공정성을 높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확신합니다. 실제로 제가 참여한 일부 프로젝트에서도 직무 중심 체계를 도입한 후 직원들의 만족도와 성과가 동시에 상승하는 사례를 목격했습니다.

인사체계 전환,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직무 중심 인사 체계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하시더라도, 막상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하실 겁니다. 저 역시 현장에서 이 질문을 수없이 받았고,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몇 가지 핵심 원칙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첫째, 직무 재설계(Job Redesign)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직무 재설계란 기존 업무를 단순히 나열하는 수준을 넘어, 각 직무가 조직의 목표 달성에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명확히 규명하는 작업입니다. 많은 기업이 직무 기술서를 작성하긴 하지만, 대부분 형식적인 수준에 그칩니다. 중요한 것은 해당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이 어떤 성과 책임을 지고, 어떤 역량을 갖춰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정의하는 것입니다.

둘째, 시니어 인력의 재교육(Re-skilling)과 배치 전략을 병행해야 합니다. 솔직히 이 부분이 현장에서 가장 어려운 지점입니다. 오랜 경력을 쌓은 분들일수록 과거의 방식에 익숙해져 있고, 새로운 기술이나 업무 방식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립니다. 하지만 AI와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는 시대에 기존 숙련도만으로는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기업은 시니어 인력이 새로운 역할에 적응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교육과 멘토링을 제공해야 하며, 동시에 그들의 경험이 빛을 발할 수 있는 직무로 재배치하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셋째, 조직 문화의 변화가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한국 기업 문화에는 여전히 연공서열과 상하 관계에 대한 강한 인식이 남아 있습니다. 직무 중심 체계에서는 나이가 많아도 직급이 낮을 수 있고, 후배가 선배보다 높은 임금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문화가 조성되지 않으면, 제도만 바꿔도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경험한 바로는, 최고경영진이 솔선수범하여 직무 가치를 존중하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전달하고, 성과 중심 평가를 공정하게 운영하는 것이 문화 변화의 출발점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법적 준비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계속고용 의무화가 법제화될 경우, 근로 계약 재체결 시 과도한 임금 삭감이나 불합리한 직무 변경을 방지하는 최소한의 안전 장치가 마련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기업은 이러한 법적 요구 사항을 미리 파악하고, 내부 규정과 인사 제도를 선제적으로 정비해야 합니다. 법이 시행된 후 허겁지겁 대응하기보다, 지금부터 준비하는 것이 훨씬 현명한 선택입니다.

정년 연장과 계속고용 의무화는 이제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2033년 국민연금 수급 연령 65세 시대를 앞두고, 기업과 개인 모두 준비해야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변화를 단순히 부담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조직의 인사 체계를 근본부터 재정비하고 진정한 성과 중심 문화를 구축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직무 기반 인사 체계는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지만, 지금부터 한 걸음씩 나아간다면 분명히 더 공정하고 생산적인 조직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 참고: https://youtu.be/a-QnH3O-uew?si=LRg_ZNY1CpdcHjlN https://www.mhlw.go.jp/stf/seisakunitsuite/bunya/koyou_roudou/koyou/koureisha/index.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