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 담당자의 진짜 역할 (직원 경험 설계, 사업 역량 확보, 인재상 정의)
채용 담당자가 추구해야 할 진짜 KPI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저는 주저 없이 '사업 역량 확보'라고 답하겠습니다. LG이노텍에서 20년 넘게 채용 업무를 진행해 온 한 인사 담당자는 채용의 본질을 '직원 경험 설계자(Employee Experience Designer)'로 정의했습니다. 채용 인원수라는 단순 수치가 아니라, 그 한 명이 조직에 어떤 역량을 가져왔고 어떤 고객에 진입할 수 있게 만들었는지가 진짜 성과라는 관점입니다. 제가 반도체 현장에서 11년간 겪어본 결과, 이 말은 이론이 아니라 뼈아픈 현실입니다.
직원 경험 설계, 채용의 시작부터 끝까지
채용 담당자의 역할을 '오퍼레이터', '리크루터', 'HR 마케터', 심지어 '엔터테이너'로 부르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채용 담당자에게 가장 필요한 정체성은 직원 경험 설계자입니다. 지원자가 처음 채용 공고를 보는 순간부터 입사 후 첫 출근까지, 그 모든 여정을 설계하고 관리하는 것이 진짜 업무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LG이노텍은 채용 여정을 12단계로 세분화해 관리합니다. 온·오프라인 상담회에서 처음 기업을 접하는 순간, 채용 공고를 읽는 순간, 지원서를 작성하는 순간, 면접을 보는 순간, 만족도 서베이에 참여하는 순간, 합격 통보를 받는 순간, 입사 안내를 받는 순간, 첫 출근해 자리에 앉는 순간, 노트북을 켜고 가족의 응원 메시지를 받는 순간, 대원 프로그램이라는 6가지 미션을 수행하는 순간, 그리고 퇴근하는 순간까지 모든 경험을 세밀하게 관리합니다.
저는 이 접근이 단순히 대기업의 여유로 보이지 않습니다. 제가 인력운영 업무를 하던 시절, 입사 첫날부터 삐걱거리던 신입사원들을 많이 봤습니다. 자리가 준비되지 않았거나, 계정이 개설되지 않았거나, 누구에게 뭘 물어야 할지 몰라 하루 종일 방치되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그런 경험이 쌓이면 '이 회사는 나를 제대로 맞이할 준비가 안 됐구나'라는 불신이 생기고, 결국 조기 퇴사로 이어지더군요. 입사자 경험 관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군대처럼 입사 첫날 명확한 미션을 주고, 멘토와 티타임을 하고, 팀장과 커리어 면담을 하는 것은 단순한 친절이 아닙니다. 이것은 입사자에게 '당신이 이 조직에서 어떤 역할을 맡을 것이고, 어떤 방식으로 성장할 수 있는지'를 구조화해서 전달하는 설계 작업입니다. 저 역시 이런 관점에서 입사자 온보딩 프로그램을 재설계한 적이 있는데, 3개월 내 조기 퇴사율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사업 역량 확보라는 KPI, 숫자 너머를 보라
채용 담당자의 진짜 KPI는 '몇 명을 채용했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역량을 확보했는가'입니다. 이 말은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실전에서는 매우 구체적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신기술 개발을 위해 특정 분야의 박사급 인재를 채용했다면, 그 인재가 입사 후 실제로 해당 기술 개발에 기여했는지, 새로운 고객사 진입의 발판이 되었는지를 추적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저는 과거 조직 문화 업무를 하면서 회사의 고유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자주 목격했습니다. 그때마다 '왜 채용 단계에서 이런 사람을 걸러내지 못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임원 인사 육성 업무를 하면서는 미래의 사업가로 성장할 인재가 내부에 부족하다는 경영진의 불만을 자주 들었고, 그때마다 '왜 채용에서 그런 인재를 선발하지 못했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채용 업무를 직접 맡고 나서야 그 어려움을 체감했습니다.
채용은 단순히 빈자리를 채우는 작업이 아닙니다. 사업 전략을 실행할 역량을 확보하는 전략적 행위입니다. 실제로 LG이노텍은 매출의 95%가 해외에서 발생하고, 글로벌 탑 기업들과의 파트너십이 핵심이기 때문에 글로벌 인재 확보에 집중합니다. 이를 위해 해외 한국인 유학생 대상 인턴십 프로그램을 4년째 운영하고, 국내 외국인 유학생 채용 프로그램을 별도로 운영하며, 해외 유학생 대상 채용 컨퍼런스도 진행합니다. 이 모든 활동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한 역량 확보'라는 사업 목표와 직결됩니다.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채용 담당자가 현업 부서와 긴밀히 소통하며 '이 포지션에 정확히 어떤 역량이 필요한지'를 끊임없이 정의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화려한 학력과 경력이라는 포장지에 속지 말고, 현장의 언어를 이해하는 실행력과 조직의 온도를 맞출 수 있는 유연함을 찾아내야 합니다. 수치로 증명되는 채용 실적보다, 현장에서 '정말 필요한 사람이 왔다'는 피드백을 받을 때 진짜 성과가 나타납니다.
인재상 정의와 AI 채용, 야구 ABS 시스템에서 배우는 본질
최근 AI 채용 도구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음성 인식, 영상 분석, 자동 평가 등 기술은 날로 정교해지지만, 정작 채용 현장에서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 야구의 ABS 시스템(Automated Ball-Strike System)을 떠올려보면 명쾌한 답이 나옵니다. ABS 시스템이 신뢰받는 이유는 기술이 정교해서가 아니라, 그 전에 '스트라이크'에 대한 명확한 정의와 기준이 있기 때문입니다.
채용도 마찬가지입니다. AI 채용을 도입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우리가 뽑고자 하는 인재에 대한 정의, 즉 인재상(Talent Profile)을 명확히 세우는 것입니다. 둘째, 그 인재상에 맞는 역량과 경험의 수준을 측정할 수 있는 기준(Competency Framework)을 구체적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가 없으면 아무리 좋은 AI 도구를 써도 채용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가장 많이 실수하는 것을 봤습니다. 인재상이 추상적이거나, 역량 기준이 모호하면 면접위원마다 다른 기준으로 평가하게 되고, 결국 '느낌'으로 뽑게 됩니다. 제가 직접 채용 프로세스를 재설계할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현업 팀장들과 함께 앉아서 '이 포지션에서 성과를 내려면 정확히 어떤 경험과 역량이 필요한가'를 문장 단위로 정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기준이 명확해지니 면접 평가의 일관성이 확보되고, 잘못된 채용으로 인한 기회비용이 확연히 줄었습니다.
LG이노텍이 운영했던 '리얼 프로젝트' 전형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석·박사 지원자에게 1박 2일 동안 실제 연구 환경과 동일한 조건에서 과제를 수행하게 하는 이 프로그램은, 단순히 스펙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실제 업무 환경에서 어떻게 일하는가'를 관찰하기 위한 설계입니다. 한 지원자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이 팀 커뮤니케이션에 약점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기업보다 학계가 맞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합니다. 비록 그 인재를 영입하지는 못했지만, 그 지원자에게는 진로를 결정하는 중요한 경험이 되었고, 회사 입장에서는 미스매칭을 사전에 방지한 성공적인 전형이었습니다.
- 인재상 정의: 우리가 뽑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 역량 기준 수립: 그 사람의 역량과 경험을 어떤 기준으로 측정할 것인가?
- 도구 선택: 그 기준을 측정하기 위해 면접, AI, 과제 등 어떤 도구를 쓸 것인가?
이 순서가 바뀌면 채용은 반드시 실패합니다. AI는 도구일 뿐, 본질은 인재상과 기준입니다.
채용 담당자는 단순히 사람을 뽑는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의 꿈을 찾아가는 여정을 설계하고 지원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11년간 HR 현장에서 일하면서, 입구에서의 철저한 검증과 세심한 경험 설계가 결국 건강한 조직 문화를 만드는 가장 효율적인 투자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채용 인원수가 아니라 사업 역량 확보를, 만족도 점수가 아니라 차별화된 경험 제공을 목표로 삼을 때, 채용 담당자는 비로소 조직의 진짜 전략 파트너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여러분의 채용 프로세스에서 '인재상'과 '역량 기준'이 명확한지 점검해보시길 권합니다.
---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pBwZt9bun-4 https://www.moel.go.kr (고용노동부 - 채용 관련 법령 및 가이드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