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데이 2025 (AI 에이전트, HR BP, 현장 밀착)
새벽 2시에 반도체 팹(Fab)에서 장비 하나가 멈추면 공장 전체가 멈춥니다. 그 순간 저는 책상이 아닌 방진복을 입고 현장 엔지니어 옆에 서 있었습니다. 지난해말 미국에서 열린 워크데이 라이징 2025는 제게 묘한 기시감을 줬습니다. AI가 치폴레 매장의 매출 급증 원인을 분석하고 대응 전략까지 제시하는 장면을 보며, 저는 제가 현장에서 했던 일들이 이제 AI 에이전트로 옮겨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AI가 절대 대체할 수 없는 HR의 본질도 다시 확인했습니다.
워크데이가 선언한 시스템 오브 액션
워크데이는 이번 행사에서 '시스템 오브 레코드(System of Record)'에서 '시스템 오브 액션(System of Action)'으로의 전환을 선언했습니다. 시스템 오브 레코드란 데이터를 기록하고 보관하는 전통적인 방식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누가 입사했고, 급여가 얼마 나갔는지를 저장하는 데이터베이스 역할이죠. 그런데 이제 워크데이는 단순히 기록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AI 업무 비서로 진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저도 처음엔 이게 정말 가능할까 의심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데모를 보니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치폴레 매장 매니저가 아침에 출근했을 때 매출이 갑자기 20% 급증한 상황을 AI가 자동으로 분석했습니다. 신메뉴 파워볼이 틱톡에서 바이럴을 탔고, AI는 보수적·균형적·공격적 세 가지 대응 시나리오를 제시했습니다. 각 시나리오의 매출, 순익, 운영 비용 예측치까지 함께 제공했죠. 이건 단순한 데이터 조회가 아니라 경영 전략 회의를 AI가 대신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워크데이는 이를 위해 다섯 가지 핵심 변화를 발표했습니다. 첫째, 일루미네이트 에이전트(Illuminate Agent)라는 신규 AI 에이전트 세 개를 추가했습니다. 케이스 에이전트는 HR 문의를 자동 분류하고 답변 초안을 작성하며, 퍼포먼스 리뷰 에이전트는 성과 평가를 자동화합니다. 파이낸스 클로즈 에이전트는 월말 재무 마감을 자동 처리하죠. 제가 현장에서 밤새 작성하던 보고서를 AI가 몇 분 만에 뽑아낸다는 뜻입니다. 둘째, 워크데이 빌드(Workday Build)를 통해 기업이 직접 AI 에이전트를 개발할 수 있게 했습니다. 로우코드 방식으로 팀즈나 슬랙에서도 연동 가능하며, 마켓플레이스에 배포까지 가능합니다. 셋째, 워크데이 데이터 클라우드를 개방해 세일즈포스나 스노플레이크 같은 외부 플랫폼과 데이터를 통합할 수 있게 했습니다. 넷째, AI 지식 관리 플랫폼 산화(Sana)를 약 1조 5천억 원에 인수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마이크로소프트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코파일럿과 워크데이 에이전트가 서로 협업할 수 있게 됐습니다(출처: Workday 공식 사이트).
AI가 비즈니스 파트너가 되는 시대
한동안 HR 업계에서는 HRBP(HR Business Partner)라는 개념이 화두였습니다. HR이 단순히 규정을 집행하는 행정 조직이 아니라, 비즈니스 성과에 직접 기여하는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였죠. 그런데 워크데이의 발표를 보면서 이제는 AIBP(AI Business Partner) 시대가 열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AI가 데이터를 분석하고 성과를 평가하며 심지어 전략까지 제안한다면, HR 담당자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솔직히 이 부분이 제일 고민됐습니다. 저는 현장에서 엔지니어들과 직접 대화하며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책을 설계했습니다. 하지만 AI가 이런 역할을 대신한다면, HR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기서 제가 내린 결론은, HR은 이제 파트너를 넘어 비즈니스 아키텍트(Business Architect)나 오케스트레이터(Orchestrator)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AI가 제시한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그것이 우리 회사의 문화와 가치에 맞는지 판단하며, 최종 의사결정을 내리는 역할 말이죠.
예를 들어 저는 HBM 패키징 인력의 이탈 조짐을 데이터가 아니라 현장 대화를 통해 먼저 포착했습니다. 데이터상으로는 평범한 이직률이었지만, 실제로는 기술 난도 급증과 멘토링 부담이라는 구조적 문제가 숨어 있었죠. AI가 통계를 보여주기 전에, 저는 이미 기술 멘토링 수당과 교대 근무 리프레시 시스템을 설계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AI가 제공하는 정량적 인사이트와 현장에서 얻은 정성적 인사이트를 결합하는 능력이 앞으로 HR의 핵심 역량이 될 것입니다.
Spoke 조직과 현장 밀착의 중요성
워크데이의 비전이 '시스템 오브 액션'이라면, 그 액션의 최종 목적지는 결국 사람이 숨 쉬고 장비가 돌아가는 현장이어야 합니다. 저는 Spoke 조직, 즉 본사에서 떨어진 현장 조직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본사 HR은 전사 정책을 수립하지만, 실제로 그 정책이 현장에서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건 Spoke 조직의 BP입니다. 책상에서 데이터만 보는 HR과 현장에 들어가 엔지니어 옆에 서는 HR은 완전히 다른 존재입니다.
제가 팹에 들어갔을 때 가장 놀랐던 건, 데이터가 포착하지 못하는 '공기'였습니다. 시니어 엔지니어들은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지만, 실제로는 기술 전수 압박과 성과 달성 사이에서 번아웃 직전이었습니다. 이건 어떤 AI도 데이터 클라우드로 포착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조직 내 정치적 역학 관계, 개인의 동기부여 결함, 현장 특유의 암묵지는 데이터로 수치화되지 않습니다. 현장 깊숙이 들어가는 BP만이 이 공백을 메울 수 있습니다.
다만 현장 밀착이 단순히 '감성적 케어'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10년 차 이상의 시니어 BP라면, 현장에서 얻은 정성적 인사이트를 다시 데이터화하여 의사결정권자에게 제안하는 능력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현장에서 들어보니 힘들어합니다"가 아니라, "현장 BP 활동을 통해 파악된 공정 숙련도 저하 요인이 향후 수율(Yield)에 미칠 영향을 분석했습니다"로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쉽게 말해, 현장의 온도를 느끼되 그것을 냉철한 비즈니스 언어로 번역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데이터가 AI의 먹잇감이다
워크데이가 아무리 강력한 AI 에이전트를 제공해도, 결국 AI는 데이터를 먹고 자랍니다. 치폴레 사례가 가능했던 건 워크데이 안에 매출, 재고, 인력 데이터가 체계적으로 쌓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데이터가 부서별로 흩어져 있거나 형식이 제각각이라면, AI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제가 보기에 워크데이가 산화를 1조 5천억 원에 인수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회사에 쌓인 문서, 매뉴얼, 케이스 히스토리 같은 지식 자산을 AI가 학습할 수 있는 형태로 정리하는 능력이 앞으로의 경쟁력을 결정할 것입니다.
저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이 부분을 좀 더 진지하게 준비했으면 좋겠습니다. 실제로 제가 근무했던 현장에서도 중요한 기술 노하우가 시니어 엔지니어 개인의 노트에만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런 암묵지(Tacit Knowledge)를 형식지(Explicit Knowledge)로 전환하지 않으면, AI는 아무리 똑똑해도 쓸모가 없습니다. 우리 회사 데이터는 제대로 쌓이고 있는가? 부서별로 흩어진 지식이나 노하우는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있는가? AI가 학습할 수 있는 형태로 정리되어 있는가? 이 질문들에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워크데이 데이터 클라우드가 외부 플랫폼과 연결될 수 있게 개방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세일즈포스의 영업 데이터, 스노플레이크의 전사 데이터, 워크데이의 HR 데이터를 통합하면 AI는 비로소 우리 회사에 딱 맞는 인사이트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영업팀 성과가 가장 좋은 지역의 HR 데이터를 교차 분석하면, 어떤 조직 문화나 리더십 스타일이 성과와 연관되는지 파악할 수 있죠. 이런 분석은 데이터가 통합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출처: McKinsey & Company).
마지막으로, 워크데이가 제시한 핵심 변화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AI 에이전트 강화: 케이스, 퍼포먼스 리뷰, 파이낸스 클로즈 에이전트 추가
- 플랫폼 개방: 기업이 직접 AI 에이전트를 개발·배포 가능
- 데이터 통합: 외부 플랫폼과 연결하여 전사 데이터 활용
- 지식 관리 강화: 산화 인수를 통해 내부 지식 자산 AI 학습
- 생태계 확장: MS 코파일럿과 협업하여 팀즈·슬랙에서 접근 가능
저는 AI가 전략을 짜는 시대에도 HR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본질을 실현하는 방식이 달라질 뿐입니다. AI는 고도의 디지털 도구로 데이터를 분석하고 시나리오를 제시하지만, 최종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읽고 조직의 맥락을 이해하며 의사결정을 내리는 건 여전히 사람의 몫입니다. 앞으로 HR은 한 손에 AI 에이전트를, 다른 한 손에 현장의 기름때 묻은 손을 잡는 오케스트레이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kR1yL8BH7l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