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는 당신의 커리어를 설계해주지 않습니다

직원 한 명의 커리어 면담에 인사팀이 실제로 쓰는 시간은 연간 평균 1시간이 채 되지 않습니다. 이 숫자를 처음 의식했을 때, 살짝 찔렸습니다. 13년째 인사팀에 있으면서 그 1시간의 한쪽에 앉아온 사람이니까요.

회사가 직원의 커리어를 진심으로 설계해줄 것이라는 기대, 입사 초기에는 누구나 한 번쯤 품습니다. 교육도 있고, 면담도 있고, 멘토링 제도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 기대가 어디서 어떻게 어긋나는지, 인사팀 안쪽에서 보면 꽤 명확하게 보입니다.

인사팀은 실제로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인사팀을 "직원들의 성장을 챙겨주는 부서"로 생각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실제 인사팀의 업무 시간 대부분은 채용, 평가, 보상, 노무, 조직 개편, 임원 인사 이 여섯 가지에 집중됩니다.

개인의 커리어 개발은 이 중 어느 위치에 있을까요. 우선순위 경쟁에서 늘 밀립니다. 채용 공백이 생기면 채용이 급해지고, 평가 시즌이 오면 평가가 전부가 됩니다. 경력개발 면담은 연 1회도 없는 회사가 있고, 있다 해도 시스템에 답변을 입력하고 끝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게 인사팀이 나쁜 게 아닙니다. 리소스가 한정된 조직에서 우선순위를 정하다 보면, 당장 급한 것에 먼저 손이 가는 건 어느 팀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구조의 문제입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조사에서도 국내 기업의 체계적 경력개발 제도 운영 비율은 대기업 기준으로도 절반을 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난 바 있습니다.

HR manager reviewing staffing charts and career development documents at a corporate office desk

회사가 당신에게 집중하는 순간은 언제인가

그렇다고 인사팀이 개인의 커리어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그 관심이 집중되는 시점이 따로 있습니다. 어떤 시점인지 아십니까?

  1. 퇴직 의사를 밝혔을 때. 퇴직원이 들어온 순간 갑자기 면담이 잡히고, 평소엔 안 된다고 했던 부서 이동이나 연봉 조정이 테이블에 올라오는 경우가 생깁니다. 조직은 잃을 위기가 왔을 때 움직입니다.
  2. 고성과자로 분류됐을 때. 평가에서 지속적으로 상위 등급을 받거나 임원 눈에 띄는 사람에게는 후계자 계획(Succession Plan)이 적용됩니다. 이 리스트에 들어간 사람의 커리어 경로는 다르게 설계됩니다.
  3. 조직 개편이 필요할 때. 새 사업이 생기거나 팀이 재편될 때, 인사팀은 빠르게 "누구를 어디에"를 결정합니다. 이때 머릿속에 이미지가 그려져 있는 사람이 기회를 먼저 받습니다.

세 번째 경우가 실무에서 자주 목격되는 패턴입니다. 평소에 자신의 방향성을 명확히 표현해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 조직 개편 국면에서 의외로 큰 차이가 벌어집니다. 인사팀은 당신의 머릿속을 볼 수 없습니다.

영업 잘하는 사람이 기획으로 가기 어려운 이유

회사가 직원을 바라볼 때 가장 먼저 보는 건 개인의 성장 가능성이 아닙니다. "지금 이 사람이 이 자리에서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가"입니다. 개인의 커리어 욕구와 조직의 필요가 일치할 때는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는 이 두 방향이 늘 같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영업 성과가 좋은 사람이 기획으로 이동하고 싶다고 면담에서 밝혀도, 실제 이동이 쉽지 않은 건 악의가 아닙니다. 그 사람이 영업 자리에 있어야 조직이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회사는 회사의 목표가 있고, 직원은 직원의 목표가 있습니다. 이 구조를 이해하고 나면, 커리어를 누가 관리해야 하는지가 달라집니다.

현장에서 가장 안타까운 케이스는 한 회사에서 15년을 일하고 나온 분들입니다. 이직 시장에 나가보면 본인의 전문성이 그 회사 내부에서만 통하는 것들이었다는 걸 그때서야 알게 됩니다. 오래 다닌 회사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 시간 동안 외부 시장과 연결된 역량을 함께 쌓지 못한 것이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커리어 설계, 어디서 시작해야 하는가

본인이 해야 합니다.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실제로 커리어를 주도적으로 설계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바빠서, 몰라서, 혹은 그냥 흘러가다 보면 어떻게 되겠지 싶어서입니다.

3년 후 본인이 어디에 있고 싶은지 한 문장으로 쓸 수 있습니까? 쓸 수 없다면 방향이 없는 것입니다. 방향 없이 열심히 하면, 열심히 한 방향이 본인이 원하는 방향이 아닐 수 있습니다. 방향을 글로 쓰는 것 자체가 시작입니다.

그다음은 부족한 것을 파악하는 일입니다. 역량인지, 경험인지, 네트워크인지, 자격증인지. "더 잘해야지"는 계획이 아닙니다. 사내 경력개발 면담이 있다면 그 자리를 형식적으로 끝내지 마십시오. 없다면 팀장에게 직접 말씀드리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또한 1~2년에 한 번은 외부 채용 시장에서 본인의 시장가치를 확인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이직 의사가 없어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사가 제공하는 환경과 기회는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그 환경에서 무엇을 어떻게 가져갈지는 본인의 몫입니다. 좋은 환경일수록 성장의 필요성을 못 느끼기 쉽습니다. 그게 가장 조용한 위험입니다. 커리어는 회사가 알아서 설계해주기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돌아오지 않습니다. 지금 당장 한 문장만 써보십시오. "3년 후 나는 어디에 있고 싶은가."

자주 묻는 질문

Q. 회사에 커리어 방향을 말하면 불이익이 생기지 않나요?

A. 이직 의사로 오해받을 것을 걱정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장 방향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직원은 조직 개편 시 오히려 적합 포지션 후보로 먼저 고려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표현 방식이 중요할 뿐, 방향 자체를 숨길 이유는 없습니다.

Q. 경력개발 면담이 형식적으로 끝나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면담 자리에서 "이런 방향으로 가고 싶은데 어떤 프로젝트나 기회가 있을지 여쭤봐도 될까요?"라고 구체적으로 질문하십시오. 막연하게 역량을 쓰는 것보다 실행 가능한 기회를 함께 물어보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Q. 이직 생각이 없는데 시장가치를 확인해야 하나요?

A. 시장가치 확인은 이직 준비가 아닙니다. 본인의 역량이 사내에서만 통하는 것인지, 외부에서도 유효한지를 주기적으로 점검하는 과정입니다. 링크드인 프로필 업데이트나 헤드헌터 연락에 가볍게 응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Q. 고성과자가 아니면 회사의 관심을 받기 어렵나요?

A. 고성과자 트랙이 유리한 건 맞지만, 조직 개편 시점에서는 "이 사람이 무엇을 잘하고 어디로 가고 싶어하는가"가 명확한 사람이 기회를 받습니다. 성과 등급보다 본인의 방향성을 얼마나 명확히 알리느냐가 실질적으로 중요합니다.

Q. 커리어 방향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정해야 하나요?

A. 거창하게 시작할 필요 없습니다. "3년 후 어떤 직무에서, 어떤 종류의 문제를 풀고 있고 싶은가"를 15분 동안 글로 써보십시오. 완벽하지 않아도 됩니다. 방향을 문장으로 만드는 것 자체가 커리어 설계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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